여행/23_10 일본-후쿠오카

(일본 여행) 1일차 - 후쿠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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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1년 전부터 설계, 기획한 여행이 있다. 유부남이 친구들과, 심지어 해외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 정도는 공을 들여야 한다. 같이 가는 친구들에게 가족에 대한 헌신 강요, 와이프 분들에게도 지속적인 언질, 여행비 모아두기 등 빌드업을 열심히 하였고, 드디어 떠나게 되었다.

 

남자 5명이서 떠나는 여행. 주된 목적은 '음식'과 '술'이다. 비행시간은 최소화하기 위해 여행지는 일본 후쿠오카로 정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가는 시간도 아깝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도심까지 30분이면 간다고 했다. 이번 여행의 모토는 '3박 4일 같은 2박 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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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은 모두 대학 동기들이다. 나, YS, DK(이상 유부남), JSP, JSS(이상 싱글) 이렇게 5명은, 각자 비행기를 끊고 후쿠오카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평소와 같이 항공사 임직원 티켓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전날 밤에 비행기가 만석이 되는 바람에,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를 제값(?) 주고 타게 되었다. 간만에 대한항공이 아닌 항공사도 이용하게 되었다. DK가 타고 가는 항공편이었는데, 공항에서 DK를 만나 놀라게 해 줄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아침에 공항에서 서프라이즈로 DK를 만났으나 DK는 역시나 반응이 미덥지근했다. 리액션이 좋은 친구는 아니다. 됐고, 비행기 티켓을 발권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산 좌석(마지막 남은 좌석이었음)의 테이블이 없어 안전상 탑승이 가능한지 체크를 하느라 시간이 꽤나 지체되었다. DK가 기다려주는데 괜히 좀 미안했다. 다행히 탑승이 가능하다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를 확인하고 팔았어야지, 일단 팔고 봅니까?

 

테이블은 없었고, 등받이는 고정이 안돼 계속 움직였다

 

그래도 일단 출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는 동안 다운 받아둔 넷플릭스를 보며 가니 금방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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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셋은 30분 뒤에 도착한다. 기다리는 동안 DK는 공항 식당에서 아침부터 맥주를 한잔 때리신다. 난 더 맛있는 음식을 위해 먹지 않았다.

 

DK

 

출국 게이트에 기다리니 YS가 혼자 나왔다. 나머지 둘은 왜 안 나오냐 물으니 혼자만 사전 웹 수속을 등록해 둬서 빨리 나왔고, 나머지 둘은 아직 심사 중이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길래 조금 걱정이 되었다. JSP는 성인이 되어 첫 비행기(심지어 첫 여권..!)라고 했고, JSS는 이번이 지난달에 이은 두 번째 해외여행이라 했다. 갑자기 걱정이 매우 커졌다. YS의 무책임함을 비난하며 기다리니 다행히 둘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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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을 타고, 지하철을 타고 도심까지는 역시나 금방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YS

 

나카스카와바타 역에서 내려, 텐진교를 건너 조금 걸으니 호텔에 도착했다. 'The Breakfast hotel Tenjin'이라는 곳인데, 일본 호텔답게 좁긴 하지만 위치도 괜찮고 무엇보다 저렴하게 묵을 수 있어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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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만 맡기고, 근처에 YS가 알아봐 둔 라멘집에 가기로 했다. 주로 관광 일정은 내가, 맛집은 YS가 알아봤다.

 

 

'하카타 다루마'라는 곳인데, 딱 오픈 전에 도착했다. 돈코츠 라멘-교자 세트와 생맥주를 시켰다.

 

 

신기하게 국물에 카푸치노처럼 거품이 있었다. 국물부터 마셔보니 깊은 맛이 느껴졌다. 세트로 시킨 라멘에는 차슈가 조금 들어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차슈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JSP는 일부러 며칠 전에 한국에서 라멘을 먹고 왔다는데, 맛의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같이 나온 교자와 볶음밥도 적당히 맛있었다만, 라멘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구글 리뷰를 보니, 돼지 향 때문에 호불호가 꽤 갈릴 수 있다는데, 잡내는 한국 돼지국밥선에서 정리 가능. 국밥 즐기는 분이면 이곳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봄. 아재 5명은 그릇에 코 박고 잘 먹었다. 별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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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첫끼 식사를 하고, 바로 앞 공원에서 잠깐 쉬었다. 벤치에 앉아 JSP의 요즘 유행하는 초전도체 춤(순 엉터리), 놀이기구 시연과 같은 재롱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누울 수 있을때 누워야 한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YS가 쏜 커피와 콜라를 마시며 뭘 할지 논의를 했다. 나와 YS가 우려한 '우리 이제 뭐 하지' 모먼트가 벌써 나와서 잠깐 걱정이 되었지만, 멀리 가지는 말자는 의사의 합치로 가까운 곳에 있는 쇼핑몰 '캐널 시티'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 모두 쇼핑에 큰 뜻이 없었기에 여행 계획에서 일부러 제외한 곳이었는데, 갑자기 가게 되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에이 가면 다 재밌어'라며 아저씨 톤으로 목소리를 내보았다.

 

나카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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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널시티는 생각보다 컸고 볼거리도 많았다.

 

JSP

 

무엇보다 안 왔으면 아쉬웠을 만큼 분수대 광장이 예뻤다. 많은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편히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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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뽑기 샵에도 들렀다.

 

 

알바가 수시로 인형을 뽑힐 듯 말듯한 위치로 재배치하며 도전욕을 자극했다. 인형 잡기를 몇 판 정도 도전해 보고 둘러보던 중, 손톱깎이 크기의 칼날로 인형이 매달린 실을 자르는 게임기가 보였다. 어? 좀 쉬워 보이는데 하고 도전을 해봤는데..

 

한번에 뽑음!

 

월드컵에서 역전골을 넣은 희열이 느껴졌다. 게다가 좋아하는 손오공 피규어라서 기분이 더 좋았다. 내 성공은 소심하게 구경만 하던 친구들을 자극한 듯했다. 그렇지만 아저씨들의 느린 순발력과 흐린 판단력으로는 더 이상 뽑기가 쉽지 않았다.

 

호텔 체크인 시간까지 대충 때울 요량으로 온 곳이었는데, 이것저것 구경하고 즐기며 재밌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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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2인-3인으로 방을 나누기로 했다. 원래 여행 계획을 많이 짠 나와 YS가 2인실을 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어찌 그거 했다고 염치없이 2인실을 쓰겠는가. 남자답게 데덴찌를 제안했다. 데덴찌 결과, 2인실에 DK와 YS, 3인실에 나와 JSP, JSS가 당첨되었다. 오케이 여기까진 괜찮았다.

 

조금 좁긴 하지만
이틀 묵는데 좀 좁으면 어때

 

1시간 정도 좀 쉬었다가, 나가기로 했다. 잠깐 눈을 붙이려고 하는데, JSS의 코골이가 꽤나 컸다. 사실 JSS가 코골이가 좀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 방에 있는 모두가 코를 고는 것 같으니 잘됐다는 생각도 들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따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귀마개를 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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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푹 잘 수 없었다. DK와 YS가 나가자고 문을 두드린다. 역대급 꿀잠을 잤다며, DK가 신생아처럼 조용히 잔다고 말하는 YS가 진짜 얄미웠다. DK 분명히 코 고는 친구인데 일부러 안곤다고 하는 건가. 아무튼 대충은 쉬었으니 밖으로 나왔다.

 

'오호리 공원'에 가기로 했다. 저녁 6시에 야키니쿠 집을 예약을 해뒀는데,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 남아 좀 애매했지만, 과감한 결단력으로 오호리 공원을 찍고 식당에 가기로 했다. 어차피 공원과 식당이 그 근처였기 때문이다.

 

 

공원은 넓고 한적했고, 호수는 잔잔하고 평온했다. 호수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을 건너, 후쿠오카 성터를 지나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에 우리가 와있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며, 천천히 산책을 했다. 날씨도 좋아 노을도 너무 예뻤다. 카메라에는 담지 못했지만, 보름달 마저 엄청 컸다. 친구들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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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도착. YS가 예약해 둔 곳이다. '타이겐 Taigen'이라는 야키니쿠 전문점이다. 가장 기본 코스(5,500엔)를 시켰다.

 

얼굴 가리기 진짜 귀찮네
적셔..

 

야키니쿠는 처음 먹어보는데, 우리나라 소고기 구이와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고기는 직접 구워야 했다. 그렇지만 고기 잘 굽는 내가 있어서 괜찮다.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우설-램프(우둔)-특상 갈비-특상 로스
살살 녹구요
등심
감동입니다

 

와규는 소문대로 정말 기름졌다. 풍미가 세다 보니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고기의 씹는 맛은 거의 없고 부드럽게 녹아 사라지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첫 번째 고기였던 우설이 골고루 평이 좋았다.

 

새우
한치

 

해산물과 후식까지 다 먹으니 꽤 배가 불렀다. 가격대에 비하면 정말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다. 비교적 비싼 가격이었음에도 '가성비' 식당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직원들도 친절했다. YS가 제 역할을 다했다. 별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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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는 관광지가 다른 일본 도시에 비해 부족하다. 볼거리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후쿠오카에서 10월에 '옥토버페스트'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 좋게 열리는 시기도 딱 겹쳐, 행사장인 '레이센 공원'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성황리에 열리는 행사였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각 후쿠오카에서 가장 핫한 곳이 여길 거라고 이야기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직장인들 포함,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비가 이따금 왔는데도 축제장은 열기가 엄청났다. 좀 비쌌지만, 맥주도 한잔씩 마시며 축제를 즐겨보기로 했다.

 

 

행사장 가운데에서는 독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처음엔 좀 어설프다 싶었는데, 1시간 넘게 공연을 하며 호응을 이끌어내는 걸 보니 '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호응을 유도하는 추임새가 5가지 정도밖에 없어서 F1~F5 매크로 버튼 누른 거 같다고 한번 놀려봤다.

 

 

가요리믹스 3인방(DK, JSP, JSS)은 무대 가까이에서 소싯적 흥을 발산했다. 잘 놀지 못하는 나와 YS는 멀리서 지켜봤다. 신난 그들이 여흥을 맘껏 쏟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3인방을 행사장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10월 말에 후쿠오카에 온다면 옥토버페스트는 한 번 와보는 것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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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봐 둔 뮤직바에 가기 위해 조금 먼 길을 걸었다. 뮤직바 SNS에서 4주년 행사를 한다고 해서, 사람이 조금 많지 않을까, 아니면 우리가 편히 즐기기 어려운 분위기는 아닐까 걱정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딱 '사장님 지인들만 모여서 놀고 있는' 느낌이었다. 전부 아저씨들만 있었는데, 우리도 바로 돌아섰고, 그들도 우리를 붙잡지 않았다.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해서, 적당한 술집에 그냥 가기로 했다. 5인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으나, 조금 돌아다녀보니 괜찮아 보이는 곳에 자리가 있다고 해서 들어갔다. 이름은 'Kakunoguisu Haruyoshi Honten'. 후쿠오카 웬만한 곳에 한국어 메뉴가 있어서 좋았다. 이것저것 다 시켰다. 과장 조금 보태서 이 식당 메뉴의 절반은 시킨 듯.

 

큰 하이볼=맹물

 

무슨 이야기했는지 정확히 기억도 잘 안 난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15년 넘는 시간에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겠는가. 

 

적당히 마신 것 같은데, 그만큼 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잠에 들려는데, JSS의 코골이에 쉽게 잠을 못 잤다. 귀마개를 사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잠을 못 이루며 든 생각인데, 나도 집에서 와이프가 종종 내 코골이로 잠을 못 잔 적이 있다고 했다. 와이프가 코골이 이야기할 때마다 나 코 안곤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넘겼다. 미안해 박씨.. 코골이는 그 누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JSS가 너무 미안해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며 밤을 보냈다. 여행기에 코골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는 내가 제일 나쁜놈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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