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9_12 베트남-하노이

(베트남 여행) 2일차-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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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멈춘 기분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대충 4시가 조금 넘었다. 대략 6시간 걸려 사파에 도착한 것이었다. 버스가 움직이는 동안 잠을 잘 못잤으니, 버스가 멈춰있는 동안 좀 자려고 했다. 아침 6시경까지는 승객들이 더 잘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


그런데 기사가 버스 앞문을 열어두고 정차를 해둔 탓에, 버스 맨 앞 쪽 자리에 배정된 우리는 새벽 찬 공기에 벌벌 떨어야 했다. 나는 그래도 옷을 여러 겹 입어 엄청 춥지는 않았는데, DK는 도저히 너무 추워서 버스에서 내려 주변에 들어갈 수 있는 숙소가 있나 돌아다닌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결국 다시 들어와 추위에 떨며 내가 깨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별표 표시 길가에 버스가 정차한다.>


기사가 버스 시동을 걸어 승객들을 깨운다. 사람들은 하나 둘 내려 짐을 챙겨 어디론가들 떠난다. 우리는 바로 앞에 보이는 숙소(위 지도상 DH 사파 호텔)에 들어가 보았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안내데스크에 사람이 없었는데, 그 옆 방에 난로가 켜져 있었다.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조심스레 불렀다. 다행히, 그리고 미안하게도 잠을 자고 있던 여자 종업원이 나와주었고, 오전동안 눈을 붙일 수 있는 방을 저렴하게 내어줬다.


방이 난방이 잘 안돼 여전히 좀 추웠지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편히 잘 수 있었다.





푹자고 뜨거운 물로 샤워까지 하니 컨디션이 좋아졌다. 짐을 맡기고 바로 관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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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점을 먹으러 식당이 많이 있는 시내 쪽으로 걸어갔다.



<구름이 정말 특이했다.>




<잔잔하고 조용한 사파 호수.>


우리가 갈 식당은 '아니세 Anise'라는 곳이었다. 동남아식 레스토랑처럼 보였다. 한가하면서도 복작복작한 사파의 시내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아기 돼지가 통구이되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DK.>







식당이 막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주문이 가능한지 물으니 당연히 된다며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12월 초였지만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는 점을 느꼈다.


전날 저녁에 반미 달랑 하나씩 먹고 12시간 넘게 공복이었던 우리는 메뉴판, 구글 리뷰를 보며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켜보았다.


<열대과일 스무디.>


<DK가 사랑하는 쌀국수. 거의 매끼니 먹은듯..>



<공심채 볶음.>


<족발 튀김.>



<로컬 비어.>


음식이 정말 다 맛있었다. 다해서 약 6만 5천동,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식당이 예쁘고 깨끗해서 더 좋았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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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본격적으로 사파 투어를 떠났다. 택시를 타고 사파 소수 민족이 사는 마을인 '깟깟 마을 Cat Cat village'로 향했다.



<눈에 들어온 꼬마 아이. 막대기로 뭘 잡고 노니?>


깟깟 마을에 도착.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마을 입구에 들어갈 수 있다.



나눠준 지도를 보고 대략적인 동선을 짰다. 느낌상 한 시간 반 정도면 돌아 볼 수 있는 루트였다.






<사랑꾼 DK.>








경기도 외곽에 흔히 있는 **마을, **파크 느낌이 좀 났지만, 그래도 나름 예쁘게 꾸며놨다. 무엇보다 고산지대 자체로 맑고 신선한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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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걸으니 작은 카페가 보였다.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이렇게 개천이 보인다.








둘 다 여행 내내 지도를 잘 본다는 부심이 넘쳐흘렀지만, 길을 잃어 이상한 산골짜기로 빠져 길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둘 다 겁도 많아 이상한 길임을 재빨리 감지하고 제 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출구까지 걸어오는게 진정한 트레킹의 완성이지만 출구로 향하는 오르막 근처에서 택시의 유혹을 못이기고 택시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깟깟 마을은 생각보다는 별거 없고 그냥 잠깐 와서 산책하는 수준에서 구경하면 될 것 같다. 다만 보이는 경치가 좋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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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시판 산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를 타러 왔다.


<예전 다낭 놀이동산에서 본 회사 '선월드'가 보인다.>


<원래 우측의 역에서 열차를 타고 좌측의 케이블카역까지 가야하는데, 택시는 바로 케이블카역으로 데려다 줬다.>


표를 끊고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베트남 물가치고 표가 비싸다. 비싸다는 건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겠고 이는 안전함을 의미할 것이다(라고 믿어야만 했다).




<안전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안전하단다.>







귀가 먹먹해질 때까지 올라간다. 소리도 잘 안 들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하차. 헉.. 숨이 잘 안쉬어지고 머리가 어지럽다. 그래도 약한 티를 내기 싫어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이 높은 곳에 어떻게 돌을 가져와 지었을까? 항상 궁금하다.>



<저 높은 곳 까지 또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간다.>



드디어 도착. DK가 어디서 봤다는데 케이블카가 없던 시절에는 몇 박씩 걸려 등산하는 루트였다고 한다.



해발 3,143미터에 올라왔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천천히 숨을 내쉬고 정신을 차려보니 멋진 시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분탓이겠지만)정말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상쾌한 기분이 들었고 오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DK에게 저 멀리 보이는 선이 지평선이 아니고 구름이라고 말했다. 맞겠지?>




<올라올때 타지 못했던 푸니쿨라를 타고 사파 시내로 돌아온다.>



<사파 광장과 사파 성당. 지나가면서 슬쩍 봤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짐을 찾으러 오전에 잠시 묵은 호텔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중간에 마트에 들러 밤에 먹을 술과 간식거리를 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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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가기 전, 짐 맡긴 호텔 근처에 피자 집이 보여 그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로마노 Romano'라는 이름의 피자가게.




언제나처럼 매장 이름을 딴 '로마나' 피자와 탈리아텔레 그라탕을 시켰다. '탈리아텔레'는 칼국수같이 넙적한 모양의 파스타라고 한다. 무난한 맛이었다. DK는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위 두 메뉴와 맥주 하나, 콜라 하나 시켰는데 46만동, 우리 돈으로 2만 3천원이 나왔다. 꽤 비쌌다.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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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사실 사파에 온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이 숙소였다. '에코 팜스 하우스'라는 곳의 리조트인데, 블로그 후기에서 본 숙소 전망이 맘에 쏙 들었다.


꽤 오래 걸려, 그리고 엄청 험한 길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안내를 받고, 우리가 예약한 개별 방갈로로 이동했다. 뭐 더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 해줬다나.


<흙으로 지은 벽, 통나무로 만든 구조물. 정말 이름 그대로 '에코'였다.>



<화장실도 통유리 너머 바로 산 전망이었다.>


역시 방은 기대대로 자연친화적이고 예뻤다. 근데 적당히 자연친화적이어야지..


모든 사람에게 재능이 하나씩 있다면, 난 벌레를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다닌다. 조금 과장하면, 기분이 찜찜해서 어느 한 곳을 쳐다보면 그곳에 벌레가 있을 정도이다. 이번에도 그 불필요한 능력이 발동됐다.


커튼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작은 바퀴벌레면 괜찮으련만(아니.. 그것도 사실 아니다),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바로 DK에게 말했다. "잡아." DK는 말했다. "나 못잡아."


둘 다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일단 옷걸이를 하나씩 잡았다. 그리고 한명은 커튼을 흔들고(그것도 옷걸이로), 다른 한명은 허공에 옷걸이를 휘둘렀다. 서로 저것도 못잡냐며 비아냥거렸다. 여행 내내 유지해온 존중과 화합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바퀴벌레를 잡겠다는 건지 쫓겠다는 건지, 쫓으면 어디로 쫓겠다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며 야밤에 난리를 쳤다.


중간에 프론트에 찾아가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말했는데, 사장 혹은 매니저로 보이는 아저씨가 '어쩌라고? 여긴 에코, 자연이야. 바퀴벌레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너 남자잖아?'라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이 무슨 개같은 대답을.. 프론트가 레스토랑과 붙어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는데 좀 쪽팔리긴 했다. 어이 없었지만 쪽팔린 게 더 커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DK는 안쓰럽게 혼자 사투 중이었다.


한 시간 정도 난리를 쳤는데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갔다고 잠정 결론(정신 승리)을 짓고 이쯤 그만하기로 했다. 

지금 돌아간다 해도 그 바퀴벌레는 어떻게 처리 못했을 것 같다. 너무 커서 죽일 수도 없었다. 바퀴벌레 사진이 하나 있는 데 굳이 올리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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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저것 시켰다. 숙소 오기 전 마트에서 산 베트남 달랏 지방 와인과 함께 했다.



<돼지고기 구이와 짜조, 그리고 과일을 시켰다.>


베트남 와인은 맛도 향도 흐릿했다. 맛없다고 불평하면서 다 마신건 좀 신기했다. 싼 맛에 먹을 만은 한 건가 보다.


이 숙소의 특징 중 하나는 고양이와 개가 자연스럽게 손님과 함께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맘에 드는 부분이었다.




<DK 주변에는 고양이가,>




<그리고 내 주변에는 개들이.>


신기하게 다른 테이블 손님들에게는 잘 가지 않고 우리한테만 고양이와 개들이 모였다. 고양이는 얌전한데 비해 개들은 지들끼리 싸우고 깔고 뭉개고 난리도 아니었다. 근데 난 역시 개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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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바퀴벌레는 나갔을 거라는 힘이 되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그리고 침대에 방충망이 있으니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위안의 말을 나눴다. 이제서야 바퀴벌레가 많다는 숙소 후기가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조니워커를 한 잔씩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 잠을 잤다. 그 조니워커는 바퀴벌레를 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푸터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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