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8월 둘째 주(2) : 마지막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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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금요일. 골프 찐_찐_찐_막. Woodley에서 마지막 골프를 즐겼다. 초반에 잘 치다가 후반에 드라이버가 터지면서 총 91타. 미국 골프 라이프, 정말 즐거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을동안 골프를 몇 번 쳤다. 가격 저렴한 퍼블릭 코스부터(그래봤자 같은 퀄리티 미국 퍼블릭의 3배 비용), 명문 회원제 몇 곳도 갔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미친 골프장 가격은 이미 내가 몇 번이나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했으니 이번엔 패스. 무엇보다 미국 골프가 좋았던 점은 한 샷 한 샷 여유 있게 집중해서 칠 수 있어서 좋았던 건데, 한국에선 뒷 팀에 쫓기고 뛰어다니느라 세상 정신이 없다. 그리고 뭔 놈의 캐디가 왜 의무인지, 또 솔직히 제대로 된 캐디를 만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다. 비단결 같은 페어웨이나 그린, 그림 같은 조경은 그다음 문제고, 골프의 본질에나 집중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골프는 뿌리부터 단단히 잘못됐다.
아침마다 아들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잘 들리지도 않는 미국 라디오를 차 안에서 들으며, 전자레인지로 대충 데운 샌드위치 먹으며 골프장으로 향하던 그 시간, 또 도착해서 카트 대충 몰고 시원한 콜라 마시면서(골프칠 땐 술 안 먹는 편) 다른 사람 샷 동안 내 공은 어떻게 칠지 고민하는, 그 하찮고 부질없는 순간이 너무나 그립다. 아, 참고로 백돌이도 나름의 전략은 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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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토요일부터 12일 화요일까지 3박 4일 레이크 타호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크고 멋진, 맑은 호수에서 행복한 여행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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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수요일. 짐싸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년 살았는데도 짐이 정말 미친 듯이 많았다. 큰 가구는 대부분 팔거나 지인들에게 주고 왔는데, 잔짐은 여전히 너무나 많았다. 와이프와 같이 했으니 겨우 했지, 그러지 않았으면 일주일은 걸렸을 테다.
저녁에는 와이프와 같이 스터디를 하셨던 분 가족과 같이 동네 버거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대기업 임원까지 하셨던 분인데, 가족과 미국에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미국으로 건너와 변호사 시험을 준비 중이신 분이다. 와이프와 같이 스터디를 하시며,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운 분인데, 뜻하시는 바 모두 이루시길 바라본다.

밤늦게에는, 갑자기 동네에서 와이프 학교 동기분들이 다 같이 한 집에 모여 술을 드시고 계신다고, 우리 부부 중 아무라도 오라고 했다. 와이프는 술을 안 먹으니, 내가 가라고 해서 갑자기 나 혼자 와버렸다(?). 나랑 그렇게 친분이 있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모두 와이프 챙겨주듯이 친근하게 잘 챙겨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깔쌈하게 위스키를 후딱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젠가 모두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반갑게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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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목요일. 하루 종일 짐 싸기. 진짜 개 힘들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짐을 99% 다 정리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정신없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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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마지막날. 아침에 이삿짐 센터에서 와서 짐을 후딱 가져가 버렸다.


자잘하게 남은 잔짐이나 냉장고 식재료 같은 것은 고맙게도 대만 이웃이 흔쾌히 가져가줘서 우리도 기분이 좋았다.
남은 것은 자동차. 계획형 인간이라 자부하는 나는 공항 근처 카맥스에서 빠르게 차를 팔고, 와이프 계좌로 Check를 현금화하고 남는 시간에 여유 있게 쉬다가 공항으로 가는 철저한 플랜을 짰다.


공항 근처 카맥스에서 빠르게 차를 팔았다. 15000불에 사서 8600불에 팔았는데, 주변에 도요타 차량은 감가가 거의 안된 걸 보니, 그냥 좀 비싸더라도 도요타를 살 걸 그랬나 싶었다. 그래도 차는 잔고장 없이 안전하게 잘 탔으면 된 거다.
이제 카맥스에서 받은 Check를 현금화하기 위해 와이프 주거래은행인 BOA로 갔다. 근데 창구 직원이 체크를 딱 보더니, 본인 계좌 아니면 입금이 안된다는 거다. 사전에 인터넷에서도 확인을 했고, 또 카맥스 직원한테도 확인을 했는데 별 문제없을 거라는 말과 다르니 정말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당일에 어렵다 했다. BOA 뿐만 아니라 근처 다른 은행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이 일을 어떡해야 하나.. 미리 내 계좌 하나 개설해 둘걸 후회스러웠다. 이것 때문에 미국에 다시 오는 것도 쉽지 않고..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정말 마지막으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좀 멀리 있는 BOA 다른 지점에 갔다. 갔는데 당연히 체크 현금화는 본인 계좌에만 가능한데, 다행히 오늘 바로 계좌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거였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방에 들어가 개인정보를 하나하나 공손히 바쳐가며 계좌를 만들었다. 와이프와 나의 추측으로는 만들어주는 직원이 신입직원이었는데, 업무 경험 삼아 매니저와 같이 한번 만들어보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아무튼 겨우 계좌를 만들고 현금화까지 완료했다. 계좌에 돈이 안전하게 들어가 있는 걸 보니 드디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열쇠들을 반납하니 할 일은 정말 끝이다.

Park la brea에서의 주거 경험은 정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한국에 돌아와 좁고 답답한 아파트 생활(본인 경제력 이슈 배제하기 어려움)을 다시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의 주택 삶이 많이 그립다. 혹시나 1~2년 사실 분들은 여기 가든형에서 제발 꼭 살아보세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고맙게도 친구가 와줘서, 공항 근처인 자기 집에서 쉬다가 갈 수 있도록 해줬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친구의 신세를 지고 간다. 친구집에서 저녁도 먹고, 친구가 공항까지 또 데려다줬다. 비행기 타기 전까지 또 배웅을 해줬는데, 마지막에는 고마운 마음에 진심으로 친구들을 안아줬다. 또 아이들끼리 안아주는 모습을 보는데 작은 아이들이 이별을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른 넷이서 갑자기 눈물바다가 되어서, 덕분에 전형적인 공항 출국장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짧은 1년 동안 진심으로 좋은 인연을 쌓은 것 같아 좋았고, 미국 생활에 있어서 큰 보람 중 하나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오가면서 자주 만나기로 약속하며 헤어졌다.

밤 비행기라서 푹 자고 일어나니 서울이었다. 8월 중순의 서울은 역시나 후덥지근하고 더웠다. 그래도 이 여름이 나에게 익숙한 여름이라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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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미국 서부, 특히 캘리포니아의 자연에 대해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자연환경적으로 가장 특혜를 받은 나라가 미국이라면, 그중에 가장 제일은 캘리포니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일 온화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자유롭고, 여유롭고 또 남에게 친절하며 관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스러워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퍼져있어서,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마음이 정말 편했다. 우리나라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꼭 배웠으면 하는 부분이다. 인적 자원 하나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출산율 개박살 나면 앞으로 뭐 먹고 살 겁니까.
또 개인적으로 스스로 많이 반성한 부분인데, 이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 강했다. 맨날 일하기 싫다고 투덜대고, 언제 퇴사하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스스로에게 정말 반성이 되는 지점이었다. 노동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어느 자리에서든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Professional'하게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아, 물론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랑은 좀 다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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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1년 조금 넘게 있었던 것뿐이지만, 이것저것 느낀 게 많아 일기 말미에 두서없이 적어봤다. 타국에서 살아보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어떻게든 소중하게 기억하고 싶은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매일 회사 생활하면서 출근길이나 일하는 중에, 아 작년 이 맘때는 뭘 했었지, 보통 이 시간에는 내가 보통 뭐했었지 생각하면서 억지로 기분 좋은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와이프한테 미국 생활 말미에 "나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 같아"라고 농담반진담반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세상의 아빠들, 육아 휴직은 꼭 해보시길. 쓰고보니 무슨 한국에서 삶이 척박하고 못 살 것처럼 잔뜩 투덜거린 거 같은데, 전혀 그런 건 아닌 게 한국 오고 3개월 만에 5kg가 쪄버렸다^^ 아무튼 가끔씩(사실 대부분) 일처럼 느껴졌던 미국 생활 매일 기록하기 끝!

※ 아내 박씨는 뉴욕 바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