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7월 둘째 주: DTLA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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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조금 흐린 화요일. LA 남쪽 끝에 위치한 해양 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랜초 팔로스 베르드 Rancho Palos Verdes'라는 곳인데, LA 다운타운에서 차로 4~50분 걸리는 곳이다. 구글과 챗 GPT의 도움으로 알게 된 곳인데, 바다와 목초지가 멋진 곳이고 운이 좋으면 고래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막판에 가는 길이 좀 험했지만, 집들이 별장처럼 예쁘고 조용한 곳이었다. 관광 안내소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풀내음과 파도 소리가 피로를 싹 씻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숙소에서 싸 온 간식도 먹으며 피크닉 기분을 내보았다.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히 쉬다 오기 좋은 곳이다. 나중에 부모님이 오시면 꼭 모시러 가고 싶은 곳이다. 아, 이곳에서 정말 신기하게도 벌새를 처음 보았다. 그 이후에는 동네에서도 종종 봤지만, 처음 벌새를 본 순간이 놀라워서 잘 잊지 못하겠다.
갔다 와서 축구나 좀 보고, 오후에는 특별한 것 없이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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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박씨가 게티 미술관 예약을 한 날이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트램을 타고 미술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트램에서는 멋진 비벌리 힐즈가 보인다. '저 집은 얼마나 할까' 속물적인 질문을 주고받으며 미술관을 향했다. 날이 정말 화창했다. 햇빛에 비추는 미술관 건물 자체도 예술품처럼 멋있었다.
도연이는 조금 잘 있더니, 나중엔 지루해졌는지 얼른 집에 가자고 졸라댔다. 이해는 된다. 카페에서 맛있지만 비싼 샌드위치와 빵을 먹고 미술관 밖을 조금 더 둘러보고 돌아왔다. 여러 개의 관 중에 1개, 그것도 제대로 관람하지 못했다. 나중에 또 와봐야겠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도연이 수영 조끼가 나중에 받을 이삿짐에 이미 있어, 사줄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마트에서 세일하는 것 보고 바로 사버림. 도연이가 매일 수영 가자고 하는 것을 보니 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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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오전 내내 늦잠을 자다가, 점심으로 차이나타운에 가서 외식을 했다. 어찌 첫 외식이 꽤 늦었다. 'Jade Wok'이라는 아주 진부한 이름의 가게였는데, 손님이 다소 많아 음식이 조금 늦게 나온 것 빼고는 너무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상하이 스타일 폭립', '오렌지 치킨', '수제 두부 요리'를 시켰다. 정말 너무 맛있었다. 이곳도 나중에 지인들과 놀러 갈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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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슬슬 레지던스 생활이 끝이 보인다.
- 7월 13일. 이사 갈 집을 직접 보고 최종 확정하는 날이다. '파크 라 브레아' 단지에 다시 와서 매니저와 함께 집 후보지를 몇 개 더 보았다. 매니저는 홈페이지 리스트에서 보이지 않았던, 다른 사람이 예약해 놓은 집이지만 계약 성사 가능성이 작은 집을 우리에게 몇 개 보여줬다.
박씨는 집을 둘러보더니 '이 집이다'를 속삭여줬다. 이 전에 봤던 집보다 느낌이 훨씬 좋았다. 뒷마당도 평지, 양 옆집도 관리가 잘 되어있는 것 같았고, 햇빛도 더 잘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결국 이 집으로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며칠, 아니 길게는 몇 달의 고민이 정리가 되고 나니, 하루빨리 이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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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아침에 바닷가 마을인 '피셔스 빌리지'에 갔다 왔다. 예쁜 가게가 많았다. 천천히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좀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도연이가 자꾸 집에 돌아가자고 한다. 누구 닮아 이리 집돌이인지.. 하하..
뭐 특별한 게 있었냐면 아니지만, 그래도 드라이브 삼아 와볼 만한 곳이다. 사실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완벽하니, 어딜 가든 좋다고 느껴지는 것 같기도.
이날은 유로 결승과 코파 결승이 있던 날이다. 유로 결승은 밖에 있느라 제대로 못 봤고, 코파 결승이라도 재밌게 보기 위해, 숙소 근처 펍을 찾았다. 역시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이었는데, 펍에는 콜롬비아 사람들이 더 많았다. 옆에 혼자 앉은 아저씨(나보다 동생일지도)도 나처럼 중립으로 보러 온 사람이었고, 자기는 리버풀 팬이라서 리버풀 선수들을 응원한다고 했다. 나도 한 때 리버풀 팬이라고 이야기를 할까 했으나, 영어도 짧고 그냥 침묵을 지켰다. 엄청나게 즐거운 분위기였지만, 연장전까지 보고 들어가자니 박씨가 너무 걱정할 것 같기도 해서 정규 시간까지만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결국 연장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
- 7월 15일. 박씨가 LLM 정규 과정 전에 영어 코스를 듣는데, 그 코스가 시작된 날이다. 박씨를 학교에 데려다줬다. 요즘 느끼지만 LA는 운전이 정말 빡세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험하게 하고, 과속 차량도 많다. 미국에 온 지 며칠 됐다고 사고도 정말 많이 목격했다. 찾아보니 LA는 교통사고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는 듯. 그래서 교통사고 변호사 광고가 그렇게 많았나.
도연이가 낮잠 자는 동안, 운전면허 필기시험도 온라인으로 봤다. 인터넷과 유튜브로 예상 문제를 1시간 정도 집중해서 보고 시험을 보니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운전도 잘하고 교통법규도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제법 난이도가 있다고 느껴졌다.
- 7월 16일. 다운타운 마지막 날. 입주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뭐 하나 준비하는데도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허술한 게 정말 많았다.
입주 준비하면서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어 박씨에게 짜증도 많이 낸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 어쨌건 무사히 입주해서 잘 지내는 중! 인터넷 설치를 못해 핫스팟으로 글 여러 번 올리려다가 미친 듯이 느린 속도로 사진이 업로드가 되지 않았고,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여 인터넷 설치 후 4일 만에 글 올리기 성공. 하..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