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7월 첫째 주: DTLA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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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출국일. 어찌 1명만 비즈니스 업그레이드를 해준다고 해서, 도연이의 간택(?)으로 나 혼자 비즈니스석을 타고 오게 되었다. 몸은 편했지만 진심으로 마음이 불편했다(와인을 계속 마시며). 다행히 도연이가 큰 어려움 없이 잘 왔다고는 하나, 아내 박씨가 많이 고생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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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심사도 잘 마치고 렌트카를 픽업하러 갔다. 렌트카 업체 셔틀버스를 타고 LAX 지점에 도착, 끔찍한 업무 속도를 버텨가며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드디어 카운터에 갔다. 그러나 이게 웬 걸, 내가 예약한 렌트카는 LAX 지점이 아니라, 근처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 지점이었다. LAX 지점에서는 차량 제공이 어렵다고 했고, 어쩔 수 없이 호텔 지점으로 가야 했다. 가는 방법도 애매해서, 걸어가자니 많은 짐과 지친 아기를 데리고 갈 엄두가 안 났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셔틀버스로 다시 공항에 돌아가고, 공항에서 다시 셔틀을 타고 운전기사에게 호텔 지점을 말하면 된다고 했다. 힘들게 공항으로 돌아가 셔틀버스를 탔으나, 도착한 곳은 호텔 지점을 지나치고 다시 LAX 지점.. 운전기사도 LAX 지점 외에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우버를 타고 일단 숙소로 향했다. 다음날 렌트카 픽업 때 물어보니 렌터카 셔틀이 아닌, 호텔 셔틀을 탔어야 했다고 설명을 들었다. 정확하게 확인을 안 한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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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길. 숙소는 'Tenten Wilshire'라는 이름의 레지던스로,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곳이다. 우리가 선택한 숙소는 아니고, 박씨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숙소다. 미국 법인과 가깝기도 하고, 근처에 마트나 쇼핑몰도 멀지 않아서, 나쁘지는 않다. 다만 다운타운 자체의 홈리스 문제는 별개.
루프탑에는 짐과 작은 수영장도 있다. 관리가 잘된 숙소라기보다는, 마리화나 냄새도 간간히 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숙소다. 그래도 무엇보다 방이 넓어 생활하기 매우 쾌적하다.
근처 마트에서 간단히 마실 물과 먹을거리를 사 왔다. 저녁 즈음에 혼자 길을 나서려니 꽤나 떨렸던 기억이 난다. 그 와중에 마트에서 첫 번째로 맥주를 집었다. 다들 조금씩은 시차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밤 잠은 잘 잔 편이었다. 다만 비즈니스를 타고 온 원죄로 처음 몇 날은 소파에서 잤는데,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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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7월 3일. 어제 픽업하지 못한 렌트카를 픽업하기 위해, 우버를 타고 렌트카 지점에 갔다. 메리어트 호텔 안에 아주 작게 차려진 부스가 있었다. 순식간에 렌트카를 수령했다. 다행히 어제는 카운트 안 하고, 오늘부터 카운트해 준단다. 차는 닛산 로그였는데, 거의 신차였고 지금까지 아주 맘에 든다. 한국에 돌아가면 SUV 사자고 꾸준히 설득 중.
다음 날이 미국 독립기념일이라서 전날부터 도심 곳곳에서 폭죽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총소리인 줄 알고 엄청 겁먹었다. 옥상에서 도연이와 잠깐 밤 산책을 했다. 아직 모두 시차 적응이 완벽히 안 되어서(특히 박씨), 이 날까지는 특별히 뭐 한 거 없이 쉬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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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박씨의 제안으로 오전에는 산타모니카 해변에 다녀와 보기로 했다.
날씨가 조금 흐렸다. 박씨는 월미도 같다며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와이키키나 휴양지 같은 에메랄드 빛의 바다를 생각했단다. 그래도 유명하고 상징적인 곳에 와봤으니 위안을 삼기로. 박씨는 날씨 좋은 날에 다시 와보자고 했다.
오후에는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에코 파크'에 왔다. 큰 연못이 있는 공원이다. 오리가 정말 많았다.
공휴일임에도 불구, 사람도 적당히 있었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한인 마트에 들러 쇼핑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에는 불꽃놀이가 절정이었다. 옥상에서 도연이와 같이 구경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옥상에 모여 폭죽놀이를 구경했다. 폭죽이 눈앞에서 터지는 걸 보니 도연이는 좀 겁이 났는지, 머지않아 들어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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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며칠 전부터 싱크대 물이 잘 안 내려갔다. 숙소 측에 말해 수리를 요청했다. 오전 내내 수리를 하느라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야 유로 축구 경기를 봐서 좋긴 했다.
오후에는 간단히 숙소 근처 쇼핑을 다녀왔다. 걸어서 5분 거리인 쇼핑몰 'FIGat7th'는 다운타운 생활동안 자주 가게 될 곳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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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이사 갈 예정인 'Park La Brea'에 투어를 신청한 날이다. 아파트형과 주택형 고민하다가 주택형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우리가 정한 집을 직접 봤는데 옆 집이나 이웃 분위기가 박씨 마음에 썩 들지 않은 모양. 이건 그냥 느낌이고, 다음 주에 몇 개의 Unit을 더 보고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평생에 마당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싶어 결정한 일인데,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공용 세탁실, 벌레 등)이 예상되어 조금 두렵기는 하다. 그렇지만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인데, 경험해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단지 내에 고등학교 동창 부부가 살고 있어 집에 방문, 같이 저녁 식사와 근처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왔다. 도연이와 나이가 비슷한 딸 둘을 키우고 있다. 앞으로 이 부부와 자주 보며 지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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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일요일. LA 북서쪽에 '브렌트우드'라는 지역에 주말 마켓이 열린다고 하여 가봤다. UCLA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유명한 부촌이기도 하다. 역시 동네가 조용하고 평온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다운타운에 있다가 이곳 잔디밭에 앉아있으니 세상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는 특별히 한 것 없이 낮잠을 자고 호텔에서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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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박씨는 오전에 회사 업무로 외출. 낮 시간 동안에는 집에만 있다가 오후 늦게야 근처에 로스와 마트에 다녀왔다. 서울에선 대형 마트에 잘 안 가는데, 여기서 하루 건너 한 번씩 가게 된다. 미국에서는 장 보는 게 일과라고 하던데, 정말 그렇게 되는 듯.
이주 준비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가, 막상 오게 되니 좀 마음이 편해진 부분이 있다. 매일 무언가 준비하고 쫓기며 살다가, '내일 뭐 하고 놀지'라는 고민을 하는 게 아직 어색하다. 그 고민이 '내일은 뭐 하고 놀아야 하지'로 바뀌지 않도록 마음의 여유를 좀 가져 봐야겠다.
대략 첫 일주일을 기록해 봤는데, 이렇게 앞으로 쭉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매일 사진 한 장이든 글 한 줄이든 어떻게든 남겨두고 싶다.